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5.16 군사정변 (문단 편집) === 쿠데타 세력[* 정변세력 대부분이 육사8기에 영관급 장교였다. (육사5기들이 동조하였지만, 실질적으로 일으킨 사람들은 육사8기다.) 이는 79년 일어난 12·12 때에 중장만 3명에, 소장·준장까지 합치면 대략 10여 명 정도에 이른다는 것과 비교하면 차이가 크다. 동일하게 적용하는 것은 무리이지만, 일단 12·12 때에 하나회 반란군들이 주력으로 동원부대가 공수여단만 3개이고, (당시 서울 인근에 있는 공수여단이 총 4곳인데, 그중에 3곳) 수경사의 병력에 핵심인 30경비단과 33경비단으로 만 단위에 이른다. (저녁부터 새벽 시간이지만 대통령 유고 상황에 제주를 제외한 전국 계엄이었기에 비상체계를 생각하면 부대 내 모든 가용병력이 동원되었다.) 그러나 5·16은 일어나고 나서 계엄을 시행한 것으로 병력적인 측면에서 차이가 크다고 할 수 있다.] === * [[강상욱]] * [[구자춘]] * [[길재호]] * [[김동하(군인)|김동하]] * [[김신]] - [[김구]] 선생의 아들이자 [[대한민국 공군]] 창설 멤버인 공군의 원로로, 5·16을 지지했다. 더구나 이쪽도 [[이승만]]에게 품은 불만이 하늘을 찔렀다. * [[김용순(1926)|김용순]] * [[김윤근]] * 김인화 * ~~[[김재규]]~~[* 흔히들 5·16 군사정변의 주역 중 한 명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는 잘못된 정보다. 5·16 쿠데타 당시 국방부 총무과장(준장)으로 재직 중으로 혁명군사령부에 연행되어 조사받았으나 부정 사실이 없어 곧 풀려났다. ] * [[김재춘]] * ~~[[김정덕]]~~ * 김제민 * '''[[김종필]]''' * 김진위 * [[김형욱]] * [[류승원]] * 문성태 * 문재준 * 박기석 * 박원빈 * [[박임항]] * '''[[박정희]]''' * [[박종규]] * 박치옥 * 백태하 * 석정선 * [[신윤창]] * [[오정근]] * [[오치성]] * 유원식 * ~~[[윤보선]]~~[* 당시 대통령으로 내각책임제에서 얼굴마담이지만, 국군통수권자였기에 얼마 안 되는 군사정변 병력을 진압하고자 하였다면 못 할 것도 없었다. 그러나 이한림 장군이 뒤늦게 군사정변을 알고 진압하고자 한 것을 막은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닌 '''대통령 윤보선'''이었다. 또한 위의 경과 과정을 보면 결과론적으로 대통령인 윤보선의 위치에는 변화가 없으며, 오히려 권위가 더 신장한 듯한 모습을 보인다. (군사혁명위원회/국가재건최고희의는 행정부와 입법부를 장악한 민주당 신파의 장면 내각에 권한을 이양받았다. 물론 62년 3월에 윤보선이 하야했기에 이후에 권력 투쟁에서 밀렸다고도 할 수 있으나, 5·16 초반에는 국군통수권자로서 군인들이 일으킨 정변에서 정당성을 부여해주는 역할이었다.)] * [[윤필용]] * 이광선[* 당시 헌병차감으로 박정희가 6관구에 나타나기 전에 김재춘, 오치성 등을 체포하러 6관구에 나타났지만 김재춘의 말빨에 밀려 쿠데타군에 가담했다.] * [[이낙선]] * [[이석제]] * [[이영근(1924)|이영근]] * [[이주일(군인)|이주일]] * [[이희성]] * [[장경순(1922)|장경순]] * ~~[[장도영]]~~[* 당시 육군참모총장으로 5·16이 일어날 것에 대한 첩보를 알고 있었고, 과정이 진행되면서는 적극적이지는 않았을 뿐 동조했었다.] * [[전두환]] - 당시 육군 [[대위]]로 서울대 문리대에 ROTC 교관으로 파견 나가 있다가 5·16 정변을 맞았다. 5월 17일 아침 그는 육군본부로 찾아가 정변의 주역인 박정희 소장과 면담을 청하고, 5·16 정변의 주체가 [[원용덕]]과 [[백선엽]]의 빽으로 인해 뒷배경이 엄청 탄탄한 데다가 젊은 장교들 사이에 신망이 높았던 박정희임을 안 뒤 육사 생도들의 5·16 정변 지지 시가행진을 제안했다. 쿠데타에 반대하던 [[강영훈]] 당시 육군사관학교장을 구금시킨 후 5월 18일 아침 전두환의 [[A라고 쓰고 B라고 읽는다|설득을 빙자한 강압]]을 받은 육사 생도 800여 명이 동대문에서 시청 앞 광장까지 벌인 시가행진은 그때까지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던 일부 국민과 외국인들의 시각을 바꾸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. 이 대가로 박정희는 전두환에게 국회의원 출마를 권유했으나, 그는 군인으로 남겠다며 거절했다. * [[정래혁]] * 정명환 * [[정봉욱]] - 당시 1군 사령부의 포병부 소속이었으나, 쿠데타 발발 후 곧바로 기갑부대를 끌고와 1군 사령부 cp실로 포구를 겨냥하여 배치시켜 이한림 장군을 압박하였다. 본디 [[6.25 전쟁|한국전쟁]] 당시 [[조선인민군]] [[중령|중좌]]였으나 평소 [[김일성]]에게 염증을 느끼고 있었으며 이 때문에 [[대한민국 국군]]으로 귀순한 뒤 조선인민군의 진지 위치를 알려줘서 기습작전을 감행해 승리에 일조했다.[* 안타깝게도 상부에서 이를 [[삐라]]에 담아 선전하는 바람에 일가족이 처형당했다고 한다.] 한국전쟁 후에는 1966년에 [[대한민국 육군]] [[제7보병사단]]의 [[사단장]]과 [[육군훈련소]]장, [[육군3사관학교]] 교장을 역임했다. 7사단장 시절 조선인민군 시절 후배 장교들이 조선인민군 사단장으로 재직해 있었는데, 야간에 북한군 병력이 비무장지대로 침투하자 포격으로 격퇴하고, 직접 GP를 찾아 후배들을 향해 확성기를 틀어놓고 “[[장포스|□사단장 ○○○, 연대장 XXX, 이 간나새끼들 나 알지? 너그들 한번만 더 그렇게 놀면 '''대갈통 날려버리갔어!''']]”라고 일갈하기도 했다고 한다. * 정세웅 * 정세윤 * 정오경 * [[조남철]] * [[차규헌]] - 나중에 [[12.12 군사반란|12·12 군사반란]]에도 직접 참여하면서 전두환과 함께 2관왕을 달성한다. 게다가 차규헌은 육사 8기생. * '''[[차지철]]''' - 공수특전단 대위 신분으로 가담해 쿠데타가 성공하자 중령으로 특진 후 제대하고 이후 국회의원이 되어 정치계에 뛰어든다. * [[채명신]] * 최용관 * [[최주종]] * [[허순오]] * 한웅진 * [[홍종철(1924)|홍종철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